나는 고개를 들어 빛을 본다.
균일한 빛 속에서 인간의 시각은 빛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

흐린 날 종일 같은 빛 안에 있던 사람은 — 자기가 빛 안에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어두운 방에서 한참을 있다가 창가로 나갔을 때, 그 빛이 보인다.
빛이 보이려면, 어둠이 곁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빛을 보는 자리는 빛이 어둠과 만나는 자리일 것이다.
지금처럼 내가 보고 있는 비내리는 가로등 빛.
오후 5시 책상 위에 떨어지는 빛.
창가 커튼사이로 옅게 스며드는 빛.
그림자가 진 자리.

rainy street at night with lamp reflections
비 내린 자리, 가로등이 어둠과 만난다. Photo: selcuk sarikoz / Unsplash

빛이 무언가를 비춰서 그것이 드러날 때,
그제서야 우리는 빛이 거기 있다는 걸 안다.

만약 사방이 모두 똑같은 빛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빛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빛 안에 있기 때문에 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무슨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삶의 의미도 그런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의미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의미가 있는 순간에서는 굳이 의미를 다시 묻지 않는다.

연인을 처음 만나 몇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고 헤어진 밤이며
누군가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킨 새벽.
오랜 노력 끝에 어떤 자리에 도달한 어떤 시점의 순간.
그런 순간에 “이 순간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의미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이미 의미의 그 안에 있기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소중한 무언가를 너무 쉽게 놓치기도 하는게 아닐까

의미는 그것을 잃었을 때, 또는 그것에서 멀어졌을 때,
비로소 형체가 잡히기 때문에..

연인이 떠난 며칠 후,
그제서야 그 사람과 보낸 시간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게 된다.
부모를 보낸 일 년 후,
그제서야 그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었는지 안다.
어떤 시절에서 멀어진 십 년 후,
그제서야 그 시절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인다.

그래서 “내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종종 잘못된 자리에서 도착한다.

깊은 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친한 지인들과 헤어진 다음.
외부의 무언가가 흐려지고,
빛이 잠시 사라진 어두운 자리.
그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사람은,
빛이 거기 있을 때는 빛을 보지 못한다.

의미가 잘 흘러가던 시기에는, 우리에게 의미를 물을 여유가 없었다.
바쁘게 살고 있었거나, 누군가와 함께 있었거나, 무언가에 깊이 몰입해 있었다.
그래서 — 우리가 지금 의미를 묻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가 사라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우리가 잠시 멈춰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이 역설은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의미가 안 보일 때 스스로 의미를 묻고 찾는 게 인간인데, 그게 빛을 보지 못한다니.

물론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 그 자리에서 답을 못 찾는 것이
우리의 무능이 아니라,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빛의 구조라는 뜻이다.


의미는 만드는 것도, 찾는 것도 아닐 수 있다

의미가 안 보이는 자리에서 우리는 두 갈래에 도달한다.

하나는 의미를 만드려는 것이다.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

또 하나는 의미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믿고, 헤매는.

그러나 빛의 비유를 끝까지 따라가면
— 의미는 만드는 것도, 찾는 것도 아닐 수 있다.

빛은 우리가 만들지 않는다. 빛은 거기 있다.
우리가 빛을 보는 것은, 빛이 어둠과 만나는 자리에 우리가 있을 때다.
우리가 한 일은 —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 뿐이다.

새벽에 일출을 본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 사람은 일출을 만든 게 아니다.
일출이 시작될 그 시각, 그 동쪽이 보이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 일출이 그 사람에게 도착했다.
그 사람이 한 일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뿐이다.

의미도 빛과 같다면. 그렇다면.

의미는 어떤 거대한 결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받을 자리에 우리가 있었다는 것
— 단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 —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afternoon sunlight through window with dust
오후의 빛, 먼지까지 비추는 자리. Photo: MIROV / Unsplash

머무는 일은 가끔은 지루하고 때론 버거울 때가 있다.

머무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그 무게가 의미의 부재가 아니라 의미의 밀도라는 것을, 그 안에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것이 잔인한 자리다. 무거운 만큼 안 보인다.

사랑을 가장 깊이 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잘 모른다.
일에 가장 몰입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의미라는 걸 잘 모른다.
어느 무게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그 무게의 정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어쩌면 — 무게가 가장 클 때 가장 안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 이것이 다소 위안이 될 수도 있다.

오늘 의미가 안 보인다면, 그것이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의미 한가운데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두 가능성 모두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그리고 어느 쪽이 사실인지, 안에서는 알 수가 없다.

person walking alone down quiet night street
깊은 밤 귀가길, 어둠과 빛 사이를 걷는 자리. Photo: Julien / Unsplash

이것은 사실의 한 단면이다.

내일, 또는 다음 달, 또는 십 년 후
— 누군가가 떠나고, 어떤 자리에서 멀어지고, 시간이 지나간 다음 —
우리는 오늘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때.. 그제서야.. 오늘의 빛이 보일 수도 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빛 안에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