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왕자’라고 부른 사람.
5편에서 우리는 키아누가 슬픔의 모양을 바꾸는 첫 번째 도구 — ‘함께한 사람들에게 한 줄을 던지는 일’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도구는 —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도구는 — 가장 가까운 사람의 손을 잡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 Kim Reeves(킴 리브스). 그의 친누이입니다.
1991년 — 25살의 진단
Kim은 1966년에 태어났습니다. 키아누보다 두 살 어린 동생.
키아누가 3살 때 아버지가 떠났고, 어머니가 4번 결혼하며 가족이 시드니·뉴욕·토론토를 떠돌던 그 어린 시절.
키아누 옆에 늘 있었던 한 사람이 — 한 살 아래의 동생 Kim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떠돎의 동행자’였죠.
어떤 새로운 학교에 도착해도, 어떤 새로운 도시에 발을 디뎌도 — 늘 같은 두 사람.
키아누가 후일 한 인터뷰에서 짧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 함께 자랐어요. 그게 다예요.’
이 ‘그게 다예요’라는 한 줄에 — 그가 그 동생을 평생 어떻게 여기는지가 박혀 있습니다.
Kim도 키아누처럼 난독증을 앓았습니다.
Kim도 키아누처럼 연기에 끌렸습니다.
1990년대 초, Kim은 자기도 배우의 길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 1991년. Kim의 나이 25살.
의사가 그녀에게, 한 단어를 건넵니다.
“Leukemia.”
백혈병.
백혈병은 — 골수에서 비정상적인 백혈구가 과도하게 만들어져, 정상 혈구의 생산을 막는 혈액암입니다.
25살 여성에게 진단된 백혈병의 5년 생존율은, 1990년대 초 통계로 — 약 50%였습니다.
병원에서 ‘50%’라는 숫자를 들었을 때, 그 환자와 그 가족이 어떤 마음이 되는지를, 그 자리를 통과해본 사람들은 알고 있죠.
그 50%는 ‘반쯤 살 가능성’이 아니라 — ‘반쯤 죽을 가능성’으로 들립니다.
이 진단을 받은 1991년이, 키아누가 ‘슈퍼마켓에서 골키퍼 한 줄’을 던진 그해입니다.
그리고 — 같은 해, 키아누가 ‘1,300마일을 달려 리버 피닉스의 손에 시나리오를 쥐여준’ 그해죠.
이 한 해 안에 그에게 일어난 일들의 무게가 보입니다.
‘친구 한 명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였고. 낯선 한 명에게 한 줄을 던져 30년 우정의 시작을 만들었고. 같은 해, 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 가지 일이 모두 — 27살의 한 청년에게, 같은 해에 일어났습니다.
옆에 있겠다 — 키아누의 세 가지 결정
이때부터 — 키아누는 한 가지를 결정합니다.
누이의 옆에 있겠다.
그 결정의 무게가, 후일 그가 한 행동들로 드러납니다.
첫째.
그는 자기 LA 자택을 — 팔았습니다.
누이가 살던 동네에 더 가까운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서였죠.
가까이 산다는 것이, 일주일에 한 번 들르는 정도가 아니라 — 차로 5분 거리에 사는 것이었습니다.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누이가 ‘오빠’ 한 마디만 부르면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
둘째.
그는 누이의 식사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키아누의 ‘가족 친구’가 후일 《People》지에 직접 증언한 내용입니다.
‘키아누가 누이의 침대 옆에서 매일 손을 잡고 있었어요. 누이의 식사를 만들었고, 누이의 집을 청소했고, 누이의 약을 챙겼어요.’
매트릭스의 ‘Neo’가 — 누이의 부엌에서 죽을 끓이고, 약을 작은 컵에 나눠 담는 일을, 그가 ‘직접’ 했다는 것이죠.
셋째.
그는 — 매트릭스 ‘속편’ 촬영 일정을 — 늦췄습니다.
이게 무슨 무게를 가진 결정인지를 다시 보면 — 매트릭스 1편이 1999년에 4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직후입니다.
워너 브라더스는 ‘속편 두 편을 동시에 찍자’고 했고, 키아누 한 명을 묶어두기 위해 천문학적 금액의 출연료를 제시했죠.
키아누는 — 그 일정을 늦춥니다. ‘누이가 있다’는 한 줄로.
세계의 영화사는, 그를 ‘기다렸습니다’.
Kim 본인이, 1995년 《People》지에 한 줄로 답한 적이 있습니다.
“My brother is my prince. He listens to every word, to every comma after every word, that you are saying.”
내 오빠는 — 내 왕자예요. 그는 내가 하는 모든 말의, 모든 콤마까지 — 듣는 사람이에요.
‘매 단어’가 아니라, ‘매 단어 뒤의 콤마’까지 듣는다는 것.
우리말로 옮기면 — ‘매 마침표’가 아니라 ‘매 쉼표’까지 듣는다는 것.
말의 ‘내용’이 아니라 — 말 ‘사이의 침묵’까지를 듣는 사람.
세계가 그를 ‘Saint Keanu’라고 부르기 한참 전에, 그를 ‘왕자’라고 부른 사람은 — 그의 누이였습니다.
그게 그 호칭의 ‘원본’이죠.
10년의 손
투병은 — 1년이 아니라 ’10년’이었습니다.
1991년부터 2001년 즈음까지.
이 10년이라는 시간선은, 키아누의 비극의 연쇄와 — 정확히 같은 10년입니다.
- 1991 — Kim 진단
- 1993 — 리버 피닉스 사망
- 1996 — 키아누 매트릭스 캐스팅, 척추 수술
- 1999 — 매트릭스 1편 개봉, Ava 사산
- 2001 — 제니퍼 사망
이 모든 일이, ‘Kim의 10년 투병’ 위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가 자기 친구를 잃고 자기 딸을 잃고 자기 약혼녀를 잃은 그 모든 시간에, 그는 동시에 — ‘누이의 손을 잡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슬픔을 같은 시기에 짊어진다는 것이 어떤 무게인지를, 우리는 짐작만 할 수 있죠.
2018 카프리 — 햇살 아래
그리고 —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2010년.
Kim Reeves는 — ‘완전 관해(remission)’에 도달했습니다.
‘완전 관해’는 의학에서 — 골수와 혈액 검사에서 백혈병 세포가 검출 한계 이하로 떨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완치’와는 다른 말입니다.
‘완치’는 5년 이상 재발이 없을 때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단계.
‘완전 관해’는 — 그 5년의 시작점에 도달했다는 뜻이죠.
10년의 투병 끝에, Kim은 — 그 시작점을 통과했습니다.
2018년 12월. 이탈리아 카프리 섬.
지중해의 햇살 아래.
키아누 리브스 54살. Kim Reeves 52살.
두 사람이 보트 위에서, 함께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이 — 어느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이 사진을 다시 봅니다.
1991년에 25살에 백혈병 진단을 받은 한 여자가 — 27년이 지나, 52살이 되어 — 자기 오빠와 함께 카프리의 햇빛 아래 보트 위에 앉아 있는 사진.
그녀의 얼굴에는, 그 10년의 투병이 남긴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의 옆에는, ‘그녀가 내 왕자라고 부른 그 오빠’가 있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 인터넷이 박제한 ‘Kim은 백혈병으로 죽었다’는 신화를, 단번에 무너뜨립니다.
Kim은, 살아 있습니다. 오빠 옆에서 햇살을 받고 있죠.
이건 — 지구 위의 어떤 영화보다 좋은 결말입니다.
이름 없는 재단
Kim의 10년 투병이 끝난 즈음, 키아누는 — 자기 ‘사적인 자선재단‘을 세웠습니다.
이 재단의 정식 이름은, 키아누가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 매체가 후일 추적해 — 그것이 ‘어린이 병원 두 곳’과 ‘암 연구’에 비공개로 기부하는 재단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키아누가 단 한 번, 인터뷰에서 말한 한 줄이 있습니다.
“I have a private foundation that I’ve been operating for five or six years. It helps children’s hospitals and aids cancer research. I don’t like to put my name on it. I just let the foundation do what it does.”
5~6년째 운영하는 사적 재단이 있어요. 어린이 병원과 암 연구를 돕습니다. 거기 내 이름 붙이고 싶지 않아요. 재단이 — 알아서 합니다.
— Ladies Home Journal, 2009년
이 재단 외에 — 그가 정식으로 후원하는 단체들의 이름은 공개되어 있습니다.
- SickKids Foundation — 캐나다 어린이 병원 신약·치료법 개발 비영리
- SCORE — 척수 손상 하키 선수들을 돕는 비영리
- PETA — 동물 보호 단체
- Stand Up to Cancer — 암 환자 기금
이 네 단체의 이름을 다시 보면 — 한 사람의 인생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어린이 병원‘ — 자기 딸을 잃은 자리.
‘척수 손상 선수‘ — 자기 척추 수술을 비밀로 했던 자리.
‘동물 보호‘ — 그가 평생 채식을 해온 자리.
‘암 환자 기금‘ — 자기 누이의 10년이 새겨진 자리.
그가 어디에 돈을 보내는지를 보면 — 그가 어디서 살아왔는지가 보입니다.
여기까지가, 키아누가 ‘슬픔의 모양을 바꾸는’ 두 번째 도구 — ‘가장 가까운 사람의 손을 잡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 그의 도구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 도구는 — 한 사람의 ‘옆자리’에 있었습니다.
20년 가까이 거의 누구도 사귀지 않았던 그가, 어느 날 — 미술관 한 곳의 레드 카펫 위에서 — 처음으로 한 사람의 손을 잡고 카메라 앞에 섭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 Alexandra Grant(알렉산드라 그랜트). 화가입니다.
7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