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그리고 한 줄.
2001년 4월 제니퍼가 카후엥가 대로 위에서 멈춘 그 새벽으로부터 — 거의 18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릅니다.
그 18년 동안, 키아누는 — 거의 누구와도 사귀지 않았습니다.
이 ’18년’이라는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다시 봅니다.
서른여섯 살에 약혼녀를 잃은 한 사람이, 쉰넷이 될 때까지 — 한 사람의 손을 깊게 잡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그를 ‘Internet’s Boyfriend’라고 부르며, 그의 옆자리에 누가 들어올지를 궁금해하는 18년 동안 — 그 옆자리는 비어 있었죠.
그 자리에는 — ‘Crepes on Cole에서 마지막으로 크레페를 함께 먹은 한 사람’의 얼굴이, 아직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Alexandra Grant — 한 권의 책, 두 권의 책, 한 출판사
그 18년의 어느 시점에, 한 사람이 천천히 그의 옆자리에 — 들어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 Alexandra Grant(알렉산드라 그랜트).
이 이름을 처음 들어본 한국 독자가 많을 겁니다.
그녀는 배우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녀는 — 화가입니다.
Alexandra는 1973년 미국 오하이오 페어뷰 파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둘 다 대학 교수. 어린 시절을 멕시코시티에서 보냈고, 5개 언어를 구사합니다.
미국 명문 스워스모어 대학(Swarthmore)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전공하고, California College of the Arts에서 미술 석사를 받았죠.
그녀의 작업은 — ‘글자’를 다룹니다.
‘글자를 다룬다’는 표현을 풀어 봅니다.
그녀는 시인 엘렌 식수, 작가 마이클 조이스 같은 문학가들의 ‘문장’을 캔버스 위에 손으로 옮겨 적는 작업을 합니다.
그 문장이 캔버스 위에서 — 회화가 되고, 조각이 되고, 영상이 됩니다.
말과 그림 사이의 자리에서 — 평생을 일한 사람.
그녀는 — 자기 길을 스스로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Photo: US Embassy Guatemala, Public Domain — via Wikimedia Commons
키아누가 그녀를 처음 만난 시점은 — 2009년.
LA의 한 디너 파티에서. 친구 제니퍼 틸리(Jennifer Tilly)의 자리.
그때 키아누가, 한 권의 작은 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책의 제목은 — Ode to Happiness. 우리말로 ‘행복에 대한 송가’.
그림책에 가까운 작은 책이었습니다. 안에는 — 그가 직접 쓴, 자기 자신을 향한 ‘우울한 농담’ 같은 시구들이 적혀 있었죠.
“It’s a rainy Saturday night. I’m in a bath of self-pity.”
비 오는 토요일 밤이에요. 나는 자기 연민의 욕조에 들어가 있어요.
키아누는 — 자기를 ‘위로하지 않는 그림책‘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연민의 욕조’. 그가 자기 자신을 향해 던지는 농담의 결이, 그가 50대를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줄입니다.
영웅도, 비극의 트로피도 아닌 — ‘자기 욕조에 자기 농담으로 들어가 앉는 사람’.
그게 그였습니다.
이 작은 책의 ‘삽화와 디자인‘을 — Alexandra Grant가 맡았습니다. 두 사람의 ‘첫 협업’이었죠.
2014년. 두 사람의 ‘두 번째 책’이 나옵니다.
제목은 — Shadows. 우리말로 ‘그림자들’.
이번에는 키아누가 ‘글’. Alexandra가 ‘사진’.
2017년. 두 사람은 — 작은 출판사를 함께 차립니다.
이름은 — X Artists’ Books.
8년이 흐른 시점이었습니다. 이 8년 동안, 그들은 ‘연인’이 아니었습니다 —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들은 함께 일하는 ‘파트너’였죠.
키아누는 — 한 사람의 ‘옆자리’에 들어가는 길을, 한 권의 책으로, 또 한 권의 책으로, 한 출판사로 — 한 줄씩 만들었던 것입니다.
8년에 걸쳐. 이게, 그가 18년의 빈 옆자리를 채운 ‘방식’이었습니다.
2019년 11월 2일.
LA County Museum of Art (LACMA). 연례 미술 + 영화 갈라.
레드 카펫 위에서, 카메라가 한 장면을 잡았습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 한 여자의 ‘손‘을 잡고,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그 여자가 — Alexandra Grant.
이 한 장면이, 인터넷에서 폭발했습니다.
그리고 — 의외의 ‘논쟁’이 터졌습니다.
‘Alexandra Grant는 너무 늙었다’는 댓글들이 인터넷에 쏟아진 것입니다.
당시 Alexandra의 나이 46세. 키아누의 나이 55세. 키아누보다 9살 어린 Alexandra가 — ‘키아누에게 너무 늙었다’고 인터넷이 떠든 것이죠.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 ‘흰색’이었기 때문입니다.
Alexandra는 자기 머리카락을 염색하지 않았습니다. 30대 초반부터 백발이 들어왔고, 그녀는 그것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내 머리카락이다’. ‘내 시간이다’.
키아누가 — 인터넷이 그녀의 흰머리에 던진 댓글들을 보고, 어떤 마음이 됐는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 그가 그 다음 모든 행사에 그녀를 ‘옆에’ 데리고 다녔다는 사실은, 모든 사진이 보여줍니다.
Alexandra 본인이, 후일 《People》지에 한 줄로 답한 적이 있습니다.
“The great thing about falling in love as an adult is that my career was already built when the relationship started. I’m confident on the red carpet. I’m confident on my own. It’s the best kind of interdependence and independence.”
성인이 되어 사랑에 빠지는 것의 좋은 점은 — 관계가 시작될 때, 이미 내 커리어가 만들어져 있었다는 거예요.
나는, 레드 카펫 위에서도 자신감 있어요. 혼자서도 자신감 있어요.
가장 좋은 방식의 ‘상호의존’과, ‘독립’이에요.
‘상호의존과 독립’. 이 한 영어 표현 ‘interdependence and independence’는, 한 줄에 담긴 어른의 사랑입니다.
서로에게 기대지만, 서로의 길을 막지 않는 것.
이게 Alexandra가 자기 입으로 말한, 두 사람의 ‘옆자리’의 결이죠.
Stephen Colbert — 10초의 침묵
여기서 — 이 글의 ‘한 가운데’로 갑니다.
2019년 5월의 어느 밤. 미국 CBS의 한 토크쇼.
진행자는 — Stephen Colbert(스티븐 콜베어).

Photo: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이 진행자가 한 줄로 유명한 이유는, 그도 ‘상실’을 통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Stephen Colbert는 10살 때 비행기 사고로 자기 아버지와 두 형을 한 번에 잃었습니다.
그는 후일 한 인터뷰에서 그 상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감사하라고 배웠어요. 가장 끔찍한 일이 일어난 그 일에 대해서도 — 감사하라고.’
이 말의 무게를 알고 있는 진행자가, 어느 날 키아누 리브스를 자기 쇼에 초대한 것입니다.
그날의 인터뷰는, 《Bill & Ted 3편》 홍보 자리였습니다.
키아누가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합니다.
빌과 테드가 — 우주를 구하는 노래 한 곡을 써야 해요.
만약 그 곡을 못 쓰면 — 우주가 끝나는 거예요.
콜베어가 농담으로 받습니다.
우주가 끝나면 — 자기 자신의 죽음과, 모든 존재의 죽음을 만나야 하네요. 와우.
그리고 — 콜베어가 한 줄을 던집니다. 농담조였습니다.
“What do you think happens when we die, Keanu Reeves?”
우리가 죽으면 —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세요, Keanu Reeves?
청중이 웃었습니다. 토크쇼의 농담조 질문이었죠.
그러나 — 키아누가 답하기 전에, 잠시 멈췄습니다.
깊게 호흡합니다.
청중의 웃음이, 그 멈춤 동안 — 잠잠해집니다.
그리고 키아누가, 한 줄을 답합니다.
“I know that the ones who love us will miss us.”
우리를 사랑한 사람들이 — 우리를 그리워할 거란 걸, 압니다.
청중이 — 침묵합니다.
콜베어가 — 10초 동안 입을 열지 못합니다.
이 10초는, 미국 토크쇼 역사에서 가장 길었던 ‘진행자의 침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콜베어는 자기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평생 자기 안에서 통과해온 그 질문에, 키아누가 — 한 줄로 답했기 때문이죠.
그 답은, 신학자의 답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자의 답도 아니었습니다.
그 답은 — ‘3살에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한 사람의 답’이었고.
’23살에 멈춘 친구를 28년째 현재형으로 부르는 한 사람의 답’이었고.
‘한 호흡도 박지 못한 자기 딸을 12월 24일마다 떠올리는 한 사람의 답’이었습니다.
콜베어는, 그 답이 어디서 온 답인지를 — 알아챘습니다.
콜베어가 손을 내밀어, 키아누의 손을 — 잡았습니다.
악수가 아니라, ‘서로의 손’을 잡은 것이었죠.
같은 자리를 통과한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서로의 손을 잡는 그 한 장면.
토크쇼의 농담 자리가, 한 순간에 — 두 어른이 서로를 알아보는 자리가 됐습니다.
이 한 줄이, 그 후 —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키아누의 답’이 됐습니다.
이 한 줄이 위대한 이유는 — 그가 ‘우리가 죽은 후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 ‘우리가 죽은 후 우리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답했습니다.
이게, 60년을 살아낸 한 사람의 답이었습니다.
‘죽음은 죽은 자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 남겨진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가 — ‘남겨진 사람’으로 살아온 평생의 결론이었죠.
Waiting for Godot — 60살의 첫 브로드웨이
이 답이 나온 시점이 — 2019년이었습니다.
이로부터 — 6년 4개월이 흐릅니다.
2025년 9월 28일.
뉴욕 브로드웨이. 허드슨 극장.
키아누 리브스 60살. 인생 첫 브로드웨이 무대.
그가 직접 골라 들고 올라간 작품의 이름은 —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20세기 부조리극의 고전. 1953년에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가 박은 두 막짜리 연극.
두 친구가 무대 위에서 — 한 사람을 기다린다. 그 사람의 이름은 ‘고도(Godot)’.
1막 내내 두 친구가 농담하고, 다투고, 화해하고, 또 농담한다. 1막이 끝난다. 2막이 시작된다. 그들은 다시 기다린다.
고도는 — 끝까지 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신’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 ‘우리가 평생 기다리는 그 무언가’라고 하죠.
확실한 한 가지는 — 두 친구가 ‘기다리는 동안’에, 사람의 인생이 —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키아누가 맡은 역의 이름은 — 에스트라공(Estragon). 별명은 ‘고고(Gogo)’.
함께 무대에 오른 사람은 — 알렉스 윈터(Alex Winter).
이 이름을 다시 봅니다.
알렉스 윈터는 — 1989년 《Bill & Ted’s Excellent Adventure》에서 키아누와 함께 출연한, 그의 가장 오랜 친구입니다.
그때 두 사람의 나이는 — 키아누 24살, 알렉스 23살.
36년이 흘렀습니다.
두 청년이, 60살과 59살이 되어 — 다시 한 무대 위에 섰습니다.
그 36년 동안, 키아누는 자기 아버지를 잃었고, 자기 친구 리버를 잃었고, 자기 딸을 잃었고, 자기 약혼녀를 잃었고, 자기 척추 두 마디를 잃었고, 자기 누이가 살아남는 것을 지켰고, 자기 옆자리에 한 사람을 들이는 길을 8년에 걸쳐 한 줄씩 박았고, 콜베어 앞에서 ‘우리를 사랑한 사람들이 그리워할 거란 걸 안다’고 답했습니다.
그 모든 60년이 — 한 무대 위에 박혔습니다.
그가 그 무대 위에서 연기한 한 사람이 — ‘고도를 기다리는 한 친구’였습니다.
《Variety》의 평론이 남긴 한 줄.
“Keanu Reeves lends a gentle vulnerability to Gogo — an adult-shaped child who’s curled up on stage, trying to protect himself from whatever it is.”
키아누 리브스는 부드러운 ‘취약함’을 ‘고고’에게 입혔다. 어른의 옷을 입은 어린아이가 —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무대 위에서 웅크린다.
‘취약함(vulnerability)’. 세계 최고의 액션 스타가 — 60살의 첫 브로드웨이에서, ‘부드러운 취약함’으로 평론가들에게 박힌 것입니다.
그는, 자기를 더 ‘강해 보이게’ 하는 작품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더 ‘영웅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고를 수 있었죠.
그는 — ‘기다림’을 골랐습니다. ‘웅크림’을 골랐습니다. ‘취약함’을 골랐습니다.
이게, 60살의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박은 ‘답’이었습니다.
브로드웨이 박스오피스가 답했습니다.
8주 만에 750만 달러 제작비 회수.
2025–2026 브로드웨이 시즌의 — ‘첫 회수작’. 티켓이 매진됐죠.
키아누가 60살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고른 이유에 대해, 본인은 거의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평생이 — 이미 ‘고도를 기다리며’였기 때문입니다.
3살 때 떠난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4개의 고등학교를 거치며 ‘어디에 속하는가’를 기다렸습니다.
1,300마일을 달려간 자기 친구가 ‘예’라고 답하기를 기다렸습니다.
1993년 핼러윈 새벽 — 그가 끝까지 기다리던 친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딸의 첫 호흡을 기다렸습니다. 그 호흡은 —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약혼녀가 카후엥가 대로의 그 새벽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깨어남도 — 오지 않았죠.
누이가 백혈병에서 살아남기를 — 10년을 기다렸습니다. 이건 왔습니다.
한 사람의 옆자리를 박는 길을 — 8년을 기다렸습니다. 이건 왔습니다.
그가 60살에 무대 위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것은 — 더 이상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의 ‘삶 자체’였습니다.
조용한 맹렬함
“It did not really matter what we expected from life, but rather what life expected from us. We needed to stop asking about the meaning of life, and instead to think of ourselves as those who were being questioned by life — daily and hourly.”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 어떤 ‘방식’으로 짊어지는가가, 인생에 의미를 더한다.
—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죽음의 수용소에서》
지금까지 우리는 키아누 리브스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멀리서나마 동행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키아누의 인생을 판단도,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키아누가 짊어진 인생의 무게와 내면은 오직 키아누 스스로만 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슬픔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극복하지 않아도, 애써 잊으려 하지 않아도, 슬픔은 다른 형태로 바꾸어 살아내면 된다고 말이죠.
그리고 그 슬픔을 바꾸어 — 어떤 미사여구 없이, 자신의 방법대로 조용히 — 세상에 필요한 곳에 돌려줍니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죠.
비록 슬픔과 고통 속에 둘러싸여 있다 하더라도, 덤덤하게.
어쩌면 키아누는 — 맹렬하게 삶의 굴곡을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과 마음이 드시나요?
“인간이 자기 운명과, 그 운명에서 오는 모든 고통을 받아들이는 그 방식 안에. 인생의 매 순간에, 의미를 더할 기회가 새겨져 있다.”
—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 떠도는 생각을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지금까지 ReSeen 리씬의 세기의 인물, 키아누 리브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