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에 새겨진 글자 Ava Archer Reeves. 1999–1999.
2편에서 우리는 1993년 핼러윈 새벽에 한 친구를 잃은 키아누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리버 피닉스가 멈춘 그 자리에서, 키아누는 자기 안에 그를 — 현재형으로 살게 했습니다.
그러나 슬픔은 한 번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리버가 떠난 6년 뒤, 그에게 또 하나의 멈춤이 찾아옵니다.
이번에는 친구가 아니라 — 한 아이였습니다.

Jennifer Syme — 16살의 결단
리버가 세상을 떠난 그 새벽으로부터 — 정확히 6년 1개월 24일이 흐릅니다.
그 사이 키아누는 한 사람을 만납니다.
이름은 — 제니퍼 시미(Jennifer Syme).
그때 그녀의 나이 25살. 키아누보다 8살 어렸죠.
그녀는 일찍이 자기 길을 정한 사람이었습니다.
16살에 무작정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 감독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트윈 픽스》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제작한 그 감독의 사무실이었죠.
어린 그녀가 그 자리에서 한 말은 당돌함 그 자체였습니다.
“I love your work. Give me anything to do.”
당신의 작품이 너무 좋아요. 무슨 일이든 시켜주세요.
그녀는 그렇게 인턴으로 시작해 — 5년을 일했습니다.
비서로, 어시스턴트로. 《Lost Highway》 같은 작품에 작은 배역으로도 출연했죠.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들은 — 사람 안의 깊은 외로움과 어둠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쩌면 그는, 그런 결을 가진 사람을 가장 먼저 알아보는 감독이기도 하죠.
그가 5년 동안 자기 옆에 둔 여성이 — 제니퍼 시미였습니다.
키아누가 그녀를 사랑한 이유에 대해, 본인은 거의 말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 친구들의 증언이 한 줄로 모입니다.
“Jennifer was warm, funny, and loyal.”
제니퍼는 따뜻하고 웃기고 충실한 사람이었어요.
임신, 그리고 키아누의 결정
1999년 봄.
그녀가 키아누에게, 한 가지 소식을 전합니다.
“I’m pregnant.”
임신했어요.
키아누는 — 그날부터 한 가지를 결정했다고, 후일 보도들이 일치되게 전합니다.
그가 한 첫 번째 일은, 제니퍼에게 집을 사 주는 것이었습니다.
임신을 확인한 그 주에. 그가 직접 잔금을 치렀습니다.
왜 같이 살지 않고 따로 살게 하는 집을 사 줬을까.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 타블로이드.
당시 키아누는 《매트릭스》 개봉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곧 세계적 스타가 될 사람이었죠.
임신한 여자친구의 사진 한 장에, 황색지가 ’10만 달러까지’ 부르고 있었습니다.
(제니퍼의 어머니가 후일 한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액수입니다.)
키아누는 — 제니퍼가 자기 이름 옆에서 ‘임신부’로 사진 찍히는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사람을 카메라로부터 지키는 그의 방식이었죠.
멀리 떨어뜨려 두는 것이 아니라, 따로 안전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1999년 봄, 여름, 가을.
9개월의 임신. 태교, 초음파, 이름 짓기.
키아누와 제니퍼틑 딸이 태어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름도 정해두었습니다.
Ava Archer Syme-Reeves.
‘Ava’. 영어권에서 자주 쓰이는 여자아이의 이름. 라틴어 ‘avis’에서 온, ‘새’라는 뜻을 품은 이름입니다.
‘Archer’. 두 번째 이름. 활을 쏘는 사람.
부모는 — 자기 딸이, 새처럼 자유롭게 날기를, 그리고 활처럼 곧게 자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1999년 12월 24일 — 분만실
그러나 — 임신 만 8개월. 약 32~33주 차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니퍼가, 한 가지를 알아챕니다.
아기가 — 움직이지 않아요…
임신 후기에, 산모가 가장 자주 느끼는 감각은 — 태아의 발길질입니다.
갈비뼈를 차고, 배꼽 안쪽을 누르고, 한밤중에 산모를 깨웁니다.
그 감각이, 산모에게는 ‘아이가 살아 있다’는 가장 정직한 신호입니다.
8개월의 어느 날부터, 그 신호가 — 멈춥니다.
산모가 그것을 알아챈 그 순간이 어떤 시간이었을지를, 우리는 짐작만 할 수 있습니다.
키아누와 제니퍼는, 함께 산부인과로 갑니다.
초음파 검사실로 들어갑니다.
검사 결과 — 태아는 자궁 안에서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원인은 — 태반조기박리(placental abruption).
태반이 분만 전에 자궁벽에서 분리되어, 태아에게 가는 산소와 영양이 끊긴 것입니다.
미국 산부인과학회(ACOG)에 따르면, 전체 임신의 약 1%에서 발생하는 — 후기 사산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흔한 원인’이라는 의학적 표현은, 그 산모와 그 산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1%는, 그들에게는 100%였습니다.
199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로스앤젤레스 시더스-사이나이 의료센터.
6년 전, 리버 피닉스가 실려와 사망 판정을 받았던 — 같은 병원입니다.
제니퍼는 분만실로 들어갑니다.
이미 사망한 8개월 태아를 — 그녀가 자기 몸으로 낳아야 했습니다.
분만은 — 유도 분만이었습니다.
이 표현이 무겁게 들리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일반 분만의 모든 통증은 그대로 있고, 분만의 끝에서 만나는 첫 호흡만이 — 없는 분만이었기 때문이죠.
키아누가 그 분만실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후일 여러 매체가 일치되게 보도합니다.
그가 분만실에서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말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 공식적으로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분만대 위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손이 키아누의 손이었다는 것.
Ava Archer Syme-Reeves는 — 그날 태어났고, 그날 묻혔습니다.
생일과 사망일이 같은 날입니다.
- 생년월일: 1999년 12월 24일
- 사망일: 1999년 12월 24일
- 출생지: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 사망지: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 부친: Keanu Reeves
- 모친: Jennifer Syme
이것이 — 미국 공식 위키데이터에 박혀 있는, Ava Archer Syme-Reeves의 정보 전부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묻힌 곳은 — 로스앤젤레스 웨스트우드 빌리지 추모공원(Westwood Village Memorial Park).
마릴린 먼로의 무덤이 있는 그 공원입니다.
그러나 — 작은 묘비 하나가, 큰 묘비들 사이에 박혔습니다.
Ava Archer Reeves. 1999–1999.
생몰 연도 사이에, 보통 우리는 ‘연’만 적습니다.
이 묘비에는,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자리에 — 그녀의 한 호흡도 박히지 않은 시간 전체가 들어 있습니다.

Photo by Alexis Doine, CC0 — via Wikimedia Commons

매트릭스의 사라진 며칠
이로부터 며칠 뒤.
《매트릭스》 1편은 — 그해 가장 큰 화제작이었습니다.
박스오피스 4억 6천만 달러.
키아누 리브스는, 그 시점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배우 중 한 명이었죠.
그러나 — 1999년 12월 말의 그 사람을, 어떤 잡지도, 어떤 방송도 카메라에 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며칠 동안 —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키아누와 제니퍼는, 그 분만 후 몇 주 안에 헤어집니다.
헤어짐의 이유는, 두 사람 모두 거의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추측은 가능합니다.
같은 슬픔을 함께 견디는 일은 — 어떤 부부에게는 더 가까워지는 일이지만,
어떤 부부에게는 ‘서로의 얼굴에서 그 아이의 얼굴을 보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후자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 두 사람은 친구로 남았습니다. 자주 만났습니다.
후일 키아누가 경찰 조사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는 중이었다’고 진술하는 — 그 시점까지.
15년 뒤, John Wick
15년이 지난 2014년.
키아누 리브스는 한 영화의 주연을 맡습니다.
영화 이름은 — 존 윅(John Wick).
존 윅은 그 후 4편까지 만들어진, 키아누 인생 후반부의 대표작이 됩니다.
영화 개봉 직후의 한 인터뷰에서, 키아누는 이 역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The grief I’ve experienced is one of the foundations for this character.”
제가 지나온 슬픔이 — 이 역할의 토대 중 하나였어요.
이 한 줄을, 영화를 본 관객은 거의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나 — 《John Wick》의 도입 5분을 다시 보면, 다른 영화가 보입니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은퇴한 전설의 킬러 존 윅이 — 아내 헬렌을 병으로 잃습니다.
장례식 다음 날, 아내가 죽기 전에 미리 주문해 둔 한 마리 강아지가 도착하죠. 비글 강아지 데이지(Daisy).
아내의 마지막 편지에는 한 줄이 박혀 있습니다.
— “당신이 다시 사랑할 무언가가 필요해요.”
며칠 뒤, 존 윅의 집에 한 무리의 러시아 마피아 청년들이 침입합니다.
그들은 존 윅의 차를 빼앗아 가면서 — 강아지 데이지마저, 그가 보는 앞에서 죽이고 떠나죠.
아내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 마리의 강아지마저 잃은 그날 밤부터,
존 윅은 — 다시 살인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이후 영화는, 그가 운명을 향해 칼과 총으로 적들을 — 차갑게 처단하는 장면으로 채워집니다.
도입 5분 동안 키아누가 연기하는 한 사람은 — ‘아내를 잃은 남자’입니다.
1999년 12월 24일의 분만실과, 2001년 4월 2일의 카후엥가 대로를 통과한 그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그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이 어떤 무게였을지를 — 우리는 짐작만 할 수 있죠.
영화의 모든 총성과 모든 칼날이 — 다른 의미로 들리는 이유입니다.
그가 영화 안에서 적을 처단하는 차가움은 — 1999년과 2001년의 그가 자기 자신에게 차마 하지 못한 일,
즉 자기 사람을 데려간 운명을 향해 표출하지 못했던 분노를 — ‘John Wick’이라는 한 인물 안에서, 풀어내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 1999년 12월 24일은 — 키아누 리브스의 마지막 시련이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3개월 9일 뒤.
이번에는, 한 아이가 아니라 — 또다른 비극적인 새벽이었습니다.
4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