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친구를 하늘로 보내다.

1편에서 우리는 1991년 봄, 토론토에서 플로리다까지 1,300마일을 달려간 한 청년의 이야기를 함께 보았습니다.
그 청년이 시나리오를 손에 쥐여준 친구는 —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

영화 《마이 오운 프라이빗 아이다호》가 만들어졌고,
리버는 그해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21살이었습니다.

두 청년에게 세상 모든 것이 앞에 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 2년 6개월 뒤, 그 모든 것이 한 새벽에 멈춥니다.

리버 피닉스 1989 — River Phoenix
River Phoenix, 1989 / Alekassoul, CC BY-SA 4.0 — via Wikimedia Commons

핼러윈 토요일 밤

1993년 10월 30일 토요일 저녁.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리버 피닉스는 그날 밤 가족·친구들과 함께 외출했습니다.
여자친구 사만다 매티스(Samantha Mathis).
바로 아래 동생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 당시 19살.
여동생 레인 피닉스, 당시 21살.

이 자리에 한 명이 더 있어야 했을 사람이 있습니다. 키아누 리브스.
그러나 그는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 주에 산타클라리타 스튜디오에서. 산드라 불록과 함께 영화 《Speed》의 폭발 장면을 찍고 있었죠.

네 사람이 도착한 곳은 할리우드 선셋 대로의 한 클럽이었습니다.
이름은 — 바이퍼 룸(The Viper Room).
공동 소유주는 후크 선장의 배우 조니 뎁(Johnny Depp).

그날 밤 무대에는 한 밴드가 올라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밴드 이름은 P. 멤버 라인업이 놀라웠습니다.

  • 베이스에 Flea (Red Hot Chili Peppers)
  • 기타에 John Frusciante (역시 Red Hot)
  • 보컬에 Gibby Haynes (Butthole Surfers)
  • 알 주르겐슨 (Ministry)
  • 그리고 클럽 주인 조니 뎁

리버 피닉스는 음악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밤, 무대에 함께 올라 기타를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죠.

스물세 살의 청년이, 가장 빛나는 친구들과 함께 무대에 오를 토요일 밤.
여자친구가 옆에 있고, 동생들이 함께 있고,
그가 사랑하는 클럽에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 그는 무대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새벽 1시 51분

새벽 1시쯤, 리버는 클럽 안에서 친구 한 명에게 다가갑니다.
가수 밥 포레스트(Bob Forrest)였습니다.

리버가 어깨를 두드리고, 작게 말합니다.

“Man, I’m fucked up. I think I overdid it.”
(몸이 좋지 않아요. 과용한 것 같아요.)

밥 포레스트가 답합니다. 지금 일어서서 말할 수 있다면, 과용은 아니다.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리버는 거절합니다. 괜찮다고. 좀 나아졌다고.

몇 분 뒤, 클럽 안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납니다.
밥 포레스트가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갔을 때 — 그가 본 장면은 이랬습니다.

리버 피닉스가 클럽 앞 인도에 누워 있었습니다.
온몸이 발작 중이었습니다.
그 옆에서 사만다 매티스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아비규환의 상황.

호아킨 피닉스가 911에 전화합니다.
19살 동생의 떨리는 목소리가 — 미국 응급상황 기록에 그대로 남겨 있습니다.

“He was my brother… he’s dying, please!”
(제 형이에요. 제 형이 죽어가고 있어요. 제발.)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리버는 이미 의식이 없었습니다.
시더스-사이나이 의료센터(Cedars-Sinai Medical Center)로 이송됩니다.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합니다.

1993년 10월 31일 새벽 1시 51분.
리버 피닉스 사망. 향년 23세.

부검 결과 사인은 — 코카인과 모르핀의 복합 중독.
혈중 약물 농도는 치사량의 8배였습니다.

치사량의 8배. 이 숫자가 가리키는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리버는 그 밤 자기가 무엇을 들이켰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 코카인이라고 그에게 건넨 가루 안에, 헤로인이 섞여 있었던 것이죠.
같은 양이라도, 그 차이를 몸은 견디지 못합니다.

Speed 촬영장의 한 사람

소식이 Speed 촬영장에 전해진 시각이 정확히 몇 시였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 그 다음 며칠의 키아누에 대해, 산드라 불록이 한참 뒤에 한 인터뷰에서 짧게 증언한 적이 있습니다.

“I saw Keanu cry. Oh — that man was hurting for his friend.
He’s a private person, but you couldn’t hide that.”

(키아누가 우는 걸 봤어요. 아 — 그 사람은 자기 친구를 위해 진짜로 슬퍼했어요.
그는 사적인 사람이지만, 그건 숨길 수 없었어요.)

‘그건 숨길 수 없었어요.’
이 한 줄이, 평생 표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키아누에 대해 가장 정직한 증언일 겁니다.

리버 피닉스의 장례식에 키아누가 갔는지에 대한 공식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 그가 장례식 이후 몇 달 동안 거의 언론 앞에 서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러 매체가 일치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1991년 봄에 토론토에서 플로리다까지 1,300마일을 달렸던 그 사흘이,
키아누의 인생에서 친구를 향해 달려간 마지막 길이었을 것이라고.
그 사흘을 달려가서 손에 쥐여준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의 주인공이
— 30개월 뒤 핼러윈 새벽에 멈춰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시간을 정확히 ‘2년 반’이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시간을 그렇게 세지 않습니다.

28년의 현재형

리버의 사망으로부터 28년이 흐른 2021년. Esquire 인터뷰.

기자가 리버 피닉스에 대해 물었을 때,
키아누는 한 호흡을 멈추고 — 입을 열다가, 다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He’s… it’s weird to talk about him in the past tense.
그는 — 과거형으로 그를 말하는 게 이상해요.
I don’t want to talk about him in the past tense.

과거형으로 그를 말하기 싫어요.
So almost — always have to speak about him in the present.”

그래서 — 거의 항상, 현재형으로 말해야 해요.

기자가 다시 물었을 때, 키아누는 현재형으로 리버를 말합니다.

“He’s a really special person. So original. So unique. So smart. So talented. So ferociously creative.
그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에요. 독창적이고. 유일하고. 똑똑하고. 재능 있고. 맹렬히 창의적이에요.
So sensitive. So brave.

사려 깊고. 용감해요.
And funny. And dark. And light.

그리고 웃기고. 그리고 어두워요. 그리고 빛나요.
It was good to know him. He’s inspiring.

그를 알았던 게, 좋았어요. 영감을 줘요.
I miss him.”

그리워요.

이 인터뷰가 박힌 시점이 — 사망 28년 뒤입니다.
일반적인 인간의 슬픔은, 28년 뒤에는 — 과거형이 됩니다.
그는 좋은 친구였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정도로 멘트만 남죠.

하지만 키아누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 여전히 그는 좋은 친구다 라고 말합니다.
리버 피닉스가 28년째 그의 안에서 — 살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글을 잠시 멈추고, 한 가지를 짚고 갑니다.

1993년 핼러윈 새벽의 그 사건은 — 키아누 리브스의 첫 번째 큰 상실이었습니다.
그러나 — 마지막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 시작이었습니다.

이로부터 6년 뒤인 1999년 겨울, 그에게 또 한 번의 멈춤이 찾아옵니다.
이번에는 한 친구가 아니라 — 한 아이였습니다.

3편에서 이어집니다.